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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 128 | 이것 역시 문제가 있는데, 지역에 따라 치사율과 처치법, 백신이 다르기 때문에 변이에도 보통의 경우 지역명을 붙인다. 이걸 알파벳형으로 바꾸면 일반인들이 무슨 백신을 맞아야 할지, 감염 시 얼마나 빨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디가 바이러스 감염 위험지역인지 혼동스러워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에볼라의 변이들은 자이르형, 수단형, 분디부교형, 타이 숲형, 레스턴형 등으로 국가 이름이나 주(州), 도시의 이름을 딴 덕에 어떤 지역에 가면 어떠한 대처를 준비해야 할지 쉽게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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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 | == 다른 질병 및 사건과의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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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 == 다른 질병 및 사건과의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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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 131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전염병 사태이다 보니 과거 수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던 흑사병, 스페인 독감 등과 곧잘 비교대상이 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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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 | === 흑사병과의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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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 === 흑사병과의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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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 134 | 치명률과 총 사망자의 수라는 측면에서는 흑사병이 코로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월등히 높다. 그러나 흑사병이 유행했던 14세기와 코로나가 유행 중인 21세기의 의료 기술과 위생 관념은 월등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피해 결과만으로 둘을 비교할 수는 없다. 흑사병은 그래도 20세기 이후로는 발병률이 크게 감소한 데 반해 코로나19는 21세기의 의료 수준으로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질병이다. 만약 14세기에 코로나19가 있었다면 흑사병 이상의 피해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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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 135 | * 흑사병은 페스트균이라는 '''세균'''이 원인 병원체인 반면, 코로나19는 SARS-CoV-2라는 '''바이러스'''가 원인 병원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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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 136 | * 흑사병은 주로 '''유라시아 대륙 중심'''으로 확산되었으나, 코로나19는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더 나아가 남극까지 사실상 '''지구상의 모든 대륙'''으로 전파되었다. 더욱이 교통 수단이 현대에 더욱 발달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코로나19의 전파 속도는 흑사병 이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는 흑사병이 병의 진행속도가 굉장히 빨라, 발병 후 빠르면 몇 시간 이내로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에 숙주가 다른 사람을 전염시키기 전에 죽어버려 전파속도가 비교적 느렸던 이유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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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 137 | * 흑사병 대유행의 대명사인 중세 흑사병 이전에도 한 차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유행했고 이후에도 아시아 역병이라는 이름으로 3차로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코로나19는 아예 낯선 질병으로 등장하여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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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 === 스페인 독감과의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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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 스페인 독감과의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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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 140 | * 스페인 독감의 발생년도가 1918년인데, 당시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대사건이 있다보니 묻혀서 교과서나 역사책에서는 언급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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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 141 | * 코로나19와는 다르게 스페인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감염 시 증상만 비슷할 뿐, 서로 다른 질병의 병원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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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 142 | *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은 1918년~1919년, 지역에 따라 1920년까지 1~2년 동안 지속되었고, 코로나19 대유행은 2020년~2023년, 지역에 따라 2019년~2023년으로 3~4년 동안 지속되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강한 충격을 주고 종식되거나 풍토병화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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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 |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의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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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의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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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 145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도 같이 조명되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의 소련과 코로나19의 최초 발생지 중국 모두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한 국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련 역시 처음에는 숨기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들켜서 국제적으로 공론화 된 후에는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사과하고 소련 전역에서 예비군을 동원해 현장을 청소하는 등 뒷수습을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반면,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은 오히려 사태를 묻어버리는데 급급해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사태가 커진 이후에도 사과는커녕 다른 나라에 책임을 전가했다. 게다가 중국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자화자찬을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보이다가 결국 전 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트롤링을 한 셈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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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 147 | 중국 내에서도 미드 체르노빌을 보면서 자국의 체제를 비판하는 일이 나오기도 했다. 백악관에서도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 대응에 빗대어 비판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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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 149 | 체르노빌 사고 외에도 여러 일들이 터지자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진 소련은 붕괴되어 냉전의 폐막을 알렸다. 반면 중국은 코로나19에 대한 어설픈 대응으로 인해 안 그래도 이미 미국과 갈등을 벌이던 데에 기름을 부어서 신냉전 시대의 흐름을 가속화했다. 더욱이 몇몇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는 코로나19를 자국민 억압의 구실로 쓰기도 했다.[* 일례로 북한은 국경쪽에 철조망과 감시초소를 설치하고 감시 병력을 배치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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